취지는 좋았다.

Frame of AKA 2017. 2. 21. 21:25 |

첫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세상에는 또 한명의 초보 아빠가 태어난다.

그리고 아이의 키가 한뼘씩 자랄 때 마다 그의 어깨는 한뼘씩 주저 앉는다.





"다음주에 유치원에서 가장행렬을 한다는데 옷을 만들어 입히라네...

현경이는 발레리나가 하고 싶다는데... 어쩌지?"


"........"



애들을 재워 놓고 부부는 새벽까지  떨어진 와이셔츠와 조각천으로 옷을 만들었다.



"여보.. 그냥 빌리자... 아직도 멀었잖어..."


"에이 만들어 입히라고 했는데... 현경이만 빌려서 입고 오면 좀 그렇잖아..."


"이게 뭔짓이야 도대체..."


"그래도 자기는 내일 쉬잖어..."


 

일요일에도 출근해야 하는 아내는 그가 대신해 아이와 함께 만들어 주기를 바라는가 보다.

 

 

"유치원에서는 왜..... 이딴걸 한다고............"

 

 

그는 짜증과 함께 말을 흐렸다. 

 


 

새벽 3시

아내는 시계 바늘이 떨어져 내리는 걸 한동안 지켜보더니 빌려 입히자 한다.

그는 그렇게 그의 일요일을 지켰고 며칠 뒤 딸아이는 빌려온 발레복을 입고 나섰다.




11시 40분... 전화 벨이 울린다.


"여보 여보... 빌려 입히기를 잘했어.. 호호호...

다들 빌렸는지 사입혔는지... 아우 증말... 우리가 너무 순진했었나봐...

그 허접하게 와이셔츠로 만들어 입혔으면.. 완전 쪽당할뻔 했찌 뭐야..

난 그것도 모르고... 

그리고 민경이네는 푸대 자루로.... 뭘 만들어 입혔는데 뭔지도 모르겠고...

민경이는 푸대자루 붙잡고 울고 불고... 민경엄마도 완전 당황하고... 

암튼 그래서 말이지...

아빠들도 많이 와서 사진도 찍어주고 그랬는데...

아이 참~ 당신은.. 그 무거운 카메라 언제 쓰려고.... 그 회사는 반차도 안된데?"

 


아내의 달뜬 목소리에 그는 아찔함을 느꼈다.

반차도 못내는 회사에 다닌다는 미안함보다

100명 가까운 아이의 엄마들이 그렇게 일사분란하고 통일된 모습으로

빌려 입히고 또 사입혔다는 사실이 퇴근할 때까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셋째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다 하더라도 갓 40대..

대부분 30대 초중반인 엄마들은 그들이 아가씨였을 20대에 무엇을 보았을까?



물론 취지는 좋았다.

알림장에 적힌것처럼 아이의 꿈과 희망을 함께 이야기 하고

아이가 원하는 역할 모델에 적합한 위인을 찾아 그 위인의 직업으로 분장을 한다.

아이와 함께 옷을 만들어 입히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화목과.....


그래... 다시 생각해 봐도 역시 취지는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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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니 아내는 아직도 할 말이 많은가 보다.


"7세반 규진이라고 알아? 

그.. 있잖아.. 우리 뒤에 다세대 주택 사는 애.. 암튼 그런애가 있어..

근데 고녀석 참 똘망 똘망한것이....

그집이 좀 어렵거든....  근데 규진이가 먼저 그러더래... 

자기는 축구 선수로 분장할거니까.. 반바지에 축구공만 있음 된다고..."


"............."




 

빈곤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립의 기회를 주지 않는 사회구조 때문이라 했던가?

상대적 빈곤을 강요하는 경쟁도 사회구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원장이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꿈은 부모들이 돈과 바꿔온 가장행렬에 밟혔다. 

 

그는 아빠들의 어깨가 한뼘넘게 내려 앉는 것이 커가는 아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부모들끼리 서로의 어깨를 주저 앉히고 있었던건 아닐까?

 

아이일에 열심인 아빠들 여럿이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더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들의 뷰파인더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그리고

반바지를 입고 축구공을 든 규진이의 눈은 무엇을 담아 돌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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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KASHaNIC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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